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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에는 왜 꽃이 쓰일까?

혜림의전 2025. 10. 25. 18:14

 

인류의 장례와 함께한 꽃

 

1976년, 충북 청원군 홍수굴에서 구석기 시대의 어린아이 무덤이 발견되었습니다. 약 4만년 전의 이 무덤에는 6종류의 꽃가루를 비롯해 아이의 가슴과 주변에 국화과의 꽃이 놓여있었습니다. 현대 뿐만 아니라 고대에도 마찬가지로 장례에서 꽃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죠. 사실 인류의 역사에서 꽃과 나무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무가 수직성, 즉 하늘과 땅을 잇는 특징 때문에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면, 꽃은 피었다 지고 열매를 맺는 과정을 통해 생명의 순환을 상징했기 때문에 신성에 대한 외경을 담은 봉헌물로 취급되었습니다. 즉 꽃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습니다. 삶을 기념하고, 죽음을 넘어서는 생명의 상징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사랑받아온 꽃의 미학

 

불교에서 꽃은 아름다움의 표상이자 최고의 공양물이었습니다. 여러 불교미술과 설화에서 길상초, 목련, 철쭉, 송화, 매화, 버들꽃 등이 등장하며, 영산재에서는 주로 모란이나 작약, 연꽃, 황국화가 헌화됩니다.

특히 불교에서 빼놓을 수 없는 꽃이라면 연꽃이 있습니다. 석가모니의 출생과 연관이 되어 생명의 꽃으로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으며, 신성, 청정, 순결, 거룩함을 의미합니다. 주자는 이 연꽃을 군자의 청빈함으로, 민간에서는 다산의 상징으로 여겼습니다. 영여의 지붕에는 붉은 빛의 연꽃 봉오리 장식을 다는데, 여기에는 생명과 환생의 개념이 우리 장례전통에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편 고려시대 문인들은 군자적 기풍을 지닌 꽃들에 대해 애정을 보였습니다. 많은 작품의 소재로 소나무, 매난국죽, 모란 등이 등장합니다.

무교에서 꽃은 신의 의지를 전달하는 영적인 매개물이자 신의 상징물로써 무속인들의 종교의식에 다양하게 등장합니다. 또 이승과 저승의 경계, 죽음과 생명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신성한 공간인 서천꽃밭을 상징적으로 재현하는 도구로 지화(紙花, 종이꽃)가 활용된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이밖에도 화전놀이, 초파일 연등회, 삼짇날의 복숭아꽃, 단오날의 창포 꽃 등 세시풍속 안에서 꽃은 축귀와 정화의 역할을 해왔습니다. 즉, 우리 조상들은 꽃을 통해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복을 부르는 의례를 즐겨왔죠.

 

꽃, 장례에서 사라지다

 

하지만 유교는 다소 엄격한 편이었습니다. 꽃은 심미적으로 유혹적이기 때문에 탐닉하는 것을 경계했으며, 꽃을 기르는 것은 내면을 위로하거나 수양하는 일이라고 그 한계를 명확하게 했습니다. 대신 꽃에 대한 상징을 향유하는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매란국죽은 군자로서 갖추어야 할 절개와 지조, 해바라기는 충신, 연꽃은 청빈과 고고함을 상징한다는 식으로 말이죠. 미적인 것과 윤리적인 것이 혼재되어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실용과 검소함을 강조하는 유교적 관점, 불교적 의례에 대한 경계로 인해 장례에서 꽃이 배제됩니다. 17세기쯤 부터는 그 관행이 완전히 고착되어 결국 우리나라 장례식에서 꽃이 거의 사라집니다. 빈소에서는 흰 천과 명정, 신위와 향로 등 절제된 기호들과 정제된 예법이 자리를 채웠습니다.

 

근대와 함께 재등장하여 현대에 꽃을 피우다

 

임진왜란 이후 외국문화가 유입되고 화훼문화 확산으로 인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장례식에 꽃이 다시 등장하게 된 것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서양문화의 유입이 직접적인 계기가 됩니다. 기록에 따르면 천주교도의 장례식에 꽃이 사용되었으며, 여기에 더해 불교식 제단 장식 또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당시 일제는 황실의 상징인 국화를 홍보하기 위해 국화전시회 등을 개최하였지만, 한국 장례에 국화를 놓도록 강요한 기록은 없습니다
 
해방 이후 공식적인 장례에서 점차 꽃장식이 늘어나는데 이때까지는 꽃의 종류나 배치가 자유로웠습니다. 현대의 장례와 비슷하게 흰 국화로 빽빽하게 장식된 제단은 1979년에 이르러 박정희 대통령의 분향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개인장례에서는 2000년대가 넘어가면서 지금과 같은 획일화된 제단장식이 자리잡게 됩니다. 이는 장례의 산업화, 장례식장의 보편화와 궤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우리나라보다 먼저 장례가 산업화 되며 1970년대 이후 장례업계를 통해 국화장식이 일본 전역으로 퍼졌는데, 우리나라도 여기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이나 일본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죽음과 정결을 상징하는 흰색, 시들지 않고 오래가는 특성 때문에 흰 국화는 추모의 꽃으로 쉽게 자리잡을 수 있었습니다. 

 

장례와 꽃, 다시 생각해보기

 

장례식에서 흰 국화만을 일률적으로 사용하는 관행은 다시 생각해볼 여지가 있습니다. 국화는 일본 황실의 상징과 겹치는 측면이 있을 뿐더러, 아직도 일본은 이 꽃을 전쟁 추도식에서 주요하게 쓰고있습니다. 
우리의 문화적 전통을 이으려면 불교의 연꽃, 유교의 매화, 무교의 지화처럼 다양한 꽃과 상징을 조화롭게 활용하는 것이 합당해보입니다.  

장례의 꽃이 고정된 양식이 아닌, 고인의 삶과 신념, 가족의 마음을 담는 의미의 언어로 회복되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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